14년간 박혀있던 칡뿌리가 한 순간에 뽑혔다. 나는 어지간해선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원체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이다. 신앙을 가진 후로는 환경을 바꾸기보다 나 자신을 바꾸려 하면서 더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2005년, 대학 4학년 2학기에 첫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4년이 되었다.

나의 첫 회사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큰 은혜이다. 내가 작성한 코드가 수 많은 사람들의 손 안에서 동작하는 경험도 해 보았다. 어울리지 않는 리더 역할을 맡아서 여러 모로 성장할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을 통해 아무 준비 없이 시작한 우리 가정이 자립할 수 있었다. 이 회사의 사장은 내 학교 선배였다. 매우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함께 고생하며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을 경험했다. 이 후로도 여러 모습으로 나를 격려해 주었다. 14년간 한 회사를 다니면서 몇 번이나 슬럼프가 있었지만 이런 좋은 기억들 때문에 다시 마음을 붙잡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14년을 꼬박 채우고 뒤 돌아볼 것도 없이 단호한 마음으로 퇴사를 결정한다. 최근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고, 하나님께서 내 등을 떠 미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은 것, 회사의 리더들이 서로 반목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것 등이 내 마음을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칡뿌리같이 박혀 있는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 낸 것은 아내가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였다.

아내는 근 1년간 칩거하며 어두운 생각 속에 지냈다. 아내의 고통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가정은 6월 23일에 함께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아내는 상담을 받을 때는 즐겁게 함께 했는데, 상담이 다가오는 금요일이면 항상 가고싶지 않아 했다. 총 5회차 중 3회를 마치고, 4회차 상담을 앞둔 금요일이었다. 그 전 주에는 토요일에 근무했고, 그 주에도 수요일과 목요일을 야근하고 있었다. 다른 부서의 이사님과 선임수석님이 함께 일 하고 있었다. 우리 부서의 팀장들과 팀원 하나도 중국에 출장 가 있는 상황이었다. 나 혼자 퇴근하기가 어려워서 금요일 당일에도, 또 토요일에도 근무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아내와 받는 상담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일정을 조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받고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현재 내가 부딛혀 있는 상황을 이야기해 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토요일에 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토요일에는 오후부터 근무하는 것으로 상황을 조율하고서 아내와 다시 통화했는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다시 회사에 간다면 그것도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선택 또한 분명했다. 회사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내의 생명 문제가 그 어떤 것 보다 소중하다. 아내가 토요일 오후에 내가 근무하는 것 때문에 상담을 받을 수 없다면, 나는 토요일에 결코 근무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마음을 전화 너머 아내에게 표현했다. 아내는 다 필요없고, 지금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 때가 금요일 오후 4시였다. 나는 그러겠노라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때 내가 직장에서 일 할 떄가 아님을 깨달았다. 다시 얼굴을 보면 그 때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있겠다고 이야기하리라 다짐했다. 내가 퇴사 이야기를 꺼내면, 아내는 분명 내가 협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불쾌해 할 것이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 없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오후 다섯시가 되어서 회사를 나섰다. 집에 가서 퇴사 이야기를 꺼내자 예상했던 대로 아내가 불쾌해 했다.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이 마음에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말이 진심인지를 나에게 되물어 왔다. 아내에게 내가 퇴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내가 1년동안 겪었던 여러가지 어두운 감정을 여기에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내가 감정의 골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아내의 마음 속에는 앞으로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는 깊은 절망이 있었다.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이 생각은 사탄이 사람의 영혼을 향해 쏘는 가장 악독한 화살이 아닐까? 이 절망의 생각이 아내가 떠올리는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sad ending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퇴사한다는 이 한 가지 선택의 문제가 아내의 인식을 깨 부쉈다. “아, 저 사람이 퇴사할 수도 있구나. 저 칡뿌리같은 놈이, 그리도 깊이 박혀 있던 곳을 떠나서 다른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거구나.” 뭐 내 생각이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지. 퇴사 이야기를 듣고서 1분쯤 지났을까, 아내가 동의하는 마음을 이야기 해 주었다. 나도 좋았다. 아내와 함께 새롭게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다.

목사님께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고 대화 나눴다. 목사님께서도 오래 전 부터 내가 쉼을 가졌으면 하고 기도해 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퇴사하겠다는 이야기가 놀랍게 들리지는 않는다 하셨다. 또 우리 가정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계셨는지 알려 주셨다. 장인어른, 장모님께 퇴사하겠다는 결정을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 “우리 사위 손좀 잡아보자” 하시고 내 손을 꼭 잡고서 응원한다고 말씀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다.

퇴사를 결정하고 꼬박 2주를 보냈다. 그 동안 아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내는 나와 함께 보낸 첫 주에 집안 곳곳을 뒤집고 청소했다. 방 곳곳에 방치되어 있던 쓰레기들을 버렸다. 진작 버렸어야 할 교회의 재정 관련한 리포트들을 둘이서 수동 슈레더로 다 갈아서 버렸다. 앞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던 쓰지 않는 자전거도 내 놓았다. 예전에 회원권을 끊어 두었던 체육관에 나가서 운동도 시작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지난 주 토요일에 다녀온 마지막 상담 시간에 아내가 한 이야기들은 놀라웠다. “좀 무겁게 느껴지지만, 애 쓰면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집에 쌓여있던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나도, 선생님도 아내가 자기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로 들었다. 선생님도 아내의 변화에 놀라신 눈치였다. 우리 가정이 함께 무언가를 선택했고, 이 선택이 변화를 이루고 있다고 인식하고 계셨다.

그제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맥주 한 잔을 하면서 퇴사를 결정한 일을 돌아보았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했다. 하나님께서는 5년 전에도 우리 두 사람이 한 마음을 품도록 하셨다. 도무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두 사람이 함께 소망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그 소망을 이루어 주셨다. 이 일은 교회가 자라가는 데에 귀하게 쓰임받았다. 퇴사하는 일이 뭐 그리 큰 일이라고 이 일에 비교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내가 퇴사하니까 아내가 얼마나 좋아지는지를 보아라. 칡뿌리가 한 순간에 쑥 뽑힌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시골 산 속 흙 깊숙히 박혀있는 칡 뿌리를 한번 당겨본 사람만 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겪는 고통의 문제가 이 일을 가능하게 했다.

아내가 겪은 지난 1년간의 시간은 다시 겪고 싶은 시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이를 통해 우리 가정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시편 말씀을 새롭게 읽게 되었다. 새롭게 읽힌다. 다윗의 절절한 찬양은 그가 겪은 고통을 함께 겪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내도 나도, 이 시간을 통해서 고통받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당신의 자녀들 하나 하나에 아름다운 뜻을 두시고 영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의 모든 변화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